신영오 국장
1991년 12월 26일,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해체됐다/사진=펙셀스 제공
12월 26일은 세계 현대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날이다. 1991년 이날, 소비에트연방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20세기 내내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했던 사회주의 초강대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순간이었다. 이 사건은 한 나라의 몰락을 넘어 냉전 시대의 종식과 새로운 국제질서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냉전은 총을 들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소련이 이끄는 사회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했다. 두 진영은 직접 충돌을 피하면서도 군사력, 경제 체제, 이념, 외교 영향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세계는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 안정은 불안한 균형 위에 놓여 있었다. 핵무기는 언제든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었고 한반도와 독일, 베트남 같은 지역은 냉전의 최전선이 되었다.
소련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체제 내부에 있었다. 국가가 모든 것을 계획하는 경제 시스템은 초기에는 빠른 산업화를 가능하게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효율과 침체를 낳았다. 물자는 부족했고 국민의 생활 수준은 서방 국가들과 비교되며 점점 뒤처졌다.
여기에 미국과의 군비 경쟁은 소련 경제에 큰 부담이었으며 막대한 군사비 지출은 민생을 희생시켰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소련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1980년대 중반 등장한 고르바초프는 개혁과 개방으로 체제를 살리려 했지만 각 공화국은 독립을 요구했고 결국 1991년 12월 26일 소련은 해체를 선언했다.
소련 붕괴와 함께 냉전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세계는 더 이상 두 개의 이념 진영으로 나뉘지 않았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가 국제질서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많은 국가는 자유진영으로 편입되었다.
동유럽 국가들은 사회주의를 버리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전환했다. 국경이 열리고 교류가 확대되면서 세계는 이전보다 훨씬 연결된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1990년대는 자유무역과 글로벌화가 빠르게 확산된 시기였다.
하지만 냉전의 종식이 곧 평화의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억눌려 있던 민족, 종교 등의 갈등이 세계 곳곳에서 폭발했고 강대국 간 경쟁은 사라지지 않은 채 다른 형태로 이어졌다. 오늘날의 미·중 경쟁과 러시아의 재등장은 냉전 이후 국제질서가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련 붕괴는 한국에도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냉전 시기에 한국은 자유 진영의 최전선에 있었고 외교와 경제 활동에는 많은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한국은 중국과도 외교 관계를 맺으며 국제무대에서 활동 반경을 넓혔다. 이는 한국 경제의 세계화와 성장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 외교의 지평이 획기적으로 넓어진 것이다.
소련의 붕괴는 자유진영의 승리로 해석되지만 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자유와 시장, 민주주의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불평등, 분열, 안보 불안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자유 세계 앞에 놓여 있다.
12월 26일은 과거의 한 장면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냉전이 끝난 뒤에도 세계는 여전히 선택의 연속선 위에 있다. 소련의 붕괴가 보여준 가장 큰 교훈은 분명하다. 강대국도 체제도 국민의 신뢰와 삶의 질을 잃는 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유세계가 그 교훈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12월 26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경제엔미디어=신영오 국장]